**문화정책은

어떻게 판정하지 않는 권력이 되었는가**

흔히 문화예술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요소로 여겨지며, 문화정책은 시민이 더 나은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정책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어떤 문화가 좋은 문화이며, 그것을 어떻게 결정할 수 있는가.

이 책은 문화정책의 핵심 언어인 ‘향유’, ‘경험’, ‘역량’, ‘예술’, ‘성과’라는 개념을 따라가며 문화정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석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문화의 조건으로 사용되면서도 판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 책은 문화정책의 언어와 작동을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로 읽어낸다.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정책 언어가 무엇을 전제하고 무엇을 배열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행위를 어떻게 조직하는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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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이 문화정책 안으로 편입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이 예술적으로 순수해서도, 전통문화이기 때문도, 민족 정체성을 대표해서도 아니다. 앞서서 대규모 경험 수요를 조직했고, 차이를 생산했으며, 세계 시장에서 검증된 경험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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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노력과 참여로 얻을 수 있다. “ ”누구나 경험을 누릴 기회가 주어진다.“ 이 명제들은 기회의 평등을 말한다. 그러나 같은 명제가 결과로 설명하는 자리로 이동할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이 발생한다.

후천적 기회로 제시된 경험은 어떤 조건에서 개인의 책임 근거로 전환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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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네트워크에서는 로컬 크리에이터로 호명되고 다른 네트워크에서는 생활문화 활동가로 자신을 설명한다. 이러한 정체성 이동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정책 네트워크 안에서만 유효한 수행이다.

결국 역량 있는 시민은 특정 행위자가 아니다. 그는 **‘누군가’**이면서 동시에 언제든 대체가 가능한 **‘아무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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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자원으로 인식하는 순간 예술은 자율적 예술이라기보다 문화처럼 다뤄진다. 예술을 투입과 산출의 대상으로 계획하고 부를 창출하는 원동력으로 배치하는 논의들은 모두 생활세계의 문화 관점에서만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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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서술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도식을 따른다.

개인의 참여 → 개인의 경험 → 삶의 질 향상

이 도식은 상이한 수준의 요소들을 하나의 흐름처럼 제시한다. 그러나 그 흐름은 자연스러운 인과라기보다 단계적으로 구성된 배열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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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을 구분할 때 일은 정책이 다룰 수 있는 대상이 된다. 마찬가지로 ‘문화가 있는 삶’이라는 표어도 문화를 삶과 분리함으로써 성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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