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를 수행하는가?
토니 베넷(Tony Bennett)은 ‘삶의 방식으로서의 문화’라는 개념이 갖는 급진적 성격과 자유주의적 의미를 의심한다. 그에게 문화는 단순한 삶의 기술이 아니라, 행위를 조직하는 규범적 장치다.
문화는 세계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활동 전체를 포괄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활동들이 어떻게 분류되고 어떤 가치를 부여받는가다. 이 과정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문화는 언제나 전략적인 규범성을 통해 구성된다.
문화 개념의 확장은 생활 전반을 문화의 영역으로 포함했고 동시에 그것을 행정과 정책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때 문화는 삶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개선하고 교정하기 위한 매개 수단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문화는 ‘개혁자의 과학’이다. 그것은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을 조직하고 변화 시키기 위한 기술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개혁은 인간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는가? 그는 개선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 전제는 (정책의) 관리를 통해서 그렇다.
나는 이 주장을 올곧이 수용할 수 없다. 이런 질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관리되는 인간에게 개선이라는 말은 의미가 있는가?
문화는 인간을 바꾸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조정한다. 그래서 본문에 이렇게 썼다.
계보로 볼 때 여러 문화연구 역시 규범성을 벗어난 적은 없었다.
다만 그 규범이 어떻게 작동하고, 무엇을 자연화하며, 어떤 책임을 면제받는지는 충분히 묻지 않았다.
원문 : Culture: A Reformer`s Science
일반적으로 문화 연구는 이렇게 말한다.
문화 = 삶의 방식
여기서 베넷(Bennett)은 이렇게 말한다.
이 개념은 그렇게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개념은 단순한 기술(description)이 아니라 행위를 조직하는 규율(protocol)을 포함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