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하지 않는 권력은 무엇을 하는가?

푸코가 말하는 생-권력은 금지하거나 억압하는 권력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조직하는 권력이다.

이 권력은 외부에서 규칙을 강제하는 대신, 인간의 선택과 욕망이 형성되는 조건을 배열한다. 그래서 권력은 더 이상 무엇을 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무엇을 하게 만들고, 무엇을 반복하게 하며, 무엇이 지속되도록 만든다.

『인간정책』에서 문화정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해된다. 문화정책은 특정한 문화의 의미나 가치를 판정하지 않는다. 대신 문화가 어떻게 생산되고, 소비되고, 순환되는지를 읽고 그것이 지속될 수 있도록 조건을 구성한다. 이때 정책은 문화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이 이루어지는 환경을 설계한다.

이 구조에서 중요한 것은 욕망이다. 생-권력은 욕망을 억압하지 않는다. 오히려 욕망이 형성되는 방식을 조직한다. 사람들은 강제 되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움직인다. 그러나 그 욕망은 이미 배열된 조건 속에서 발생한다. 이때 선택은 자유로운 행위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관리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양성은 차이를 보호하는 가치로 이해되기 어렵다. 그것은 차이가 끊임없이 생산되고 순환될 수 있도록 만드는 조건이며, 생-권력이 작동하는 핵심 언어다. 다양성은 판정의 기준이 아니라, 생산과 관리의 방식이다.

이렇게 볼 때, 결국 문화정책은 문화 그 자체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것이 지속되도록 배열한다. 이때 남는 것은 특정한 문화의 우열이 아니라, 조직된 삶의 방식이다.

Michel Foucault, ‘생-권력’

4장 : 성의 장치, 5장 : 죽음의 권리와 생명에 대한 권력

참고 문헌 : 미셸 푸코, 이규현 옮김, <성의 역사 1 : 앎의 의지>, 나남출판, 2006

(1) 권력은 더 이상 억압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권력은 이렇게 이해된다.

권력 = 금지 / 억압

하지만 푸코는 이렇게 말한다.

권력은 억압하지 않는다. 권력은 삶을 조직한다.

권력은 외부에서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선택을 내부에서 구성한다.

(2) 욕망은 억압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욕망은 자연스럽고, 권력은 그것을 억압한다.

하지만 푸코는 이렇게 묻는다.